"지산만의 속도로 천천히 걷는다는 것"
그의 발걸음은 동네 뒷산 오르듯 가볍고 표정은 더없이 환하다.
눈 위를 걷는 것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는 하루에 1만보 이상을 걷고 있다. 긴 여행 후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캐빈 피어(cabin fever)를 겪고 있어요. 폐쇄된 곳이나 좁은 공간에 오랫동안 머물 때 오는 불안감을 말하죠.
그러니까 도시라는 공간에, 일상이라는 시간에 갇혀 있다 보면 어느 순간 힘들어지는 거에요. 내가 떠나고 싶은 이유도 이 때문이죠."
더 넓고 더 먼 곳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란 얘기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의 반은 눈, 반은 하늘이다.
활짝 열려 있는 곳으로 가는 길, 마음이 절로 트인다.
이제 반 정도 올랐을까. 정상까지 4.5킬로미터 남은 구간에서 잠시 멈춰 섰다.
푸릇푸릇한 침엽수림이 촘촘하게 자나고 있다.
몇년 전, 강풍이 불어 나무가 쓰러진 뒤로 간격을 좀 더 좁혀 잣나무를 심었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의지하며 지켜내고 있다.
킁킁, 싱그러운 향기가 풍겨 온다.
완만한 산행에 속도를 낼 법도 한데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느리다.
"우리는 빨리 걷는 데만 익숙해져 있어요. 여행을 가서도 그 속도를 유지하려고 하죠.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일부러 발검을을 의식하며 걸었어요. 발 뒤꿈치가 땅에 닿고 발가락의 힘으로
발을 떼는 감각에 집중했죠. 속도가 느려지니 시야가 달라졌어요.
컨디션이나 주변 풍경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랬더니 일상에서도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는 이제 도시에서도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사회에서 원하는 일률적인 속도가 아닌, 자신만의 속도를 찾은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오르막길은 완만해 걷는게 어렵지 않다.
바닥을 찍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올라갈수록 공기는 맑고, 차가워진다.
"에스키모인은 화가 나면 막대기 하나 들고 집을 나서요. 마음이 풀릴 때까지 걷다가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죠.
걷는 것은 감정을, 생각을 휘발시키는 일이에요."
걸음의 의미가 생각보다 크다.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이 더욱 느려졌다.
우울증 환자였던 어느 여성은 1년 동안 상담해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자 고심끝에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걷고 걷다 돌아온 그녀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되어 있었다.
걷기가 최고의 치유 방법이 된 셈이다.
"걷는 행위는 우리 마음에 감정과 생각의 배수구를 만들어줍니다.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과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세로토닌 등이 분비되어 마음이 잔잔해져요.
즉 걷기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명상이에요."
괴로움은 감정과 생각이 고여 있기에 일어난다.
시선을 멀리 두고 마음을 비우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
어느덧 참나무 숲을 지난다.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등 동물을 위해 열매를 떨어뜨리는 나무가 가득하다.
이곳의 동물은 꽤 행복한 가을을 보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선자령은 완만한 지형과 토양의 특수성 때문에 미나리와 끈끈이주걱, 속새 등 습지식물이
자라는 곳이기도 하다. 일정한 고도마다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어 풍경이 다채롭다.
.....
.....
그이 말처럼 온몸의 감각을 열어 본다.
눈과 귀, 손끝과 발바닥 등을 자연에 기댄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식물의 잎을 스치는 일, 바람을 만져보는 일, 눈앞에 놓인 풍경에 말을 걸고
녹음을 하는 일 등은 감각을 일깨우는 소박한 행동이다.
자연에 집중하자 생각이 휘발되고, 마음에 고요함이 들어찬다.
감각은 오직 '지금, 여기'에 머무른다.
* 정신과 의사 문요한은 정신과 의사로 20여년을 지내온 어느 날, 자신의 행복을 찾아
안식년을 선포하고 안나푸르나와 파타고니아로 떠났다.
도서 <여행하는 인간>에 그 여정과 마음이 소상히 담겨 있다.
명상심리치료 문의
참마음심리상담센터
054)276-9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