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빠의 권유로 처음으로 상담소 문턱을 넘었습니다. 한 주에 2번씩, 4주간 상담을 받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아버지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고 싶었기에 3개월 후에 상담하기로 했습니다. 공부가 될 리 만무했고 하루 종일 떠오르는 온갖 잡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상담소에 갔습니다. 가는 내내 의심했습니다. 그동안 본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상담 받던 사람이 상담사를 떠나며 얘기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전 선생님을 믿지 않았어요.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동감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그것도 한 달 새.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꾸 과거가 생각나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 전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저를 특유의 재치 있고 즐거운 말들로 상담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 둘 속에서 썩어가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상담을 진행할수록 선명해졌습니다.
제 삶을 그래프로 그릴 때에는 맏이로서 집안에서 권위를 잃고 무시당해온 일, 대학 재학 중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저에게만 전한 카톡, 문자 장난과 비난에 시달려 휴학한 일, 어릴 적부터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시기 받았던 일들이 부정적인 면으로 떠올랐습니다. 잊은 줄 알았던 일들을 끄집어 낼 때마다 자꾸 ‘믿을 사람 없다.’, ‘여럿이 하나 바보 만들기 쉽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습니다.
MBTI 성격 검사를 할 때에는 아버지와 제 성격의 유사성을 들어 그동안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착하니즘’ 이었습니다. ‘내가 배려해서 타인이 좀 편하면 되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저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도 이제껏 그렇게 사셨는데 막상 돌아보면 당신 마음은 편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없는 줄 알고 지낼 사실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시험 준비 기간 동안 생각과 마음을 고쳐먹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쳐있었습니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기 꺼려졌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상담은 너무 쉽게 그리고 단기간에 부정적인 것들을 해소해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최면으로 그 기억들을 제 속에서 하나하나 정리하고 또 버릴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상담 중, 울고 난 후에는 문제의식 없던 저로선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버려질 것 같지 않았던 기억들이 이제는 옛날 얘기가 되고 무엇을 하든 잡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명상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렇게 쉽게 리셋 될 줄 알았다면 시험을 미루고 상담을 먼저 올 걸 그랬습니다.
아빠 꿈을 항상 짊어지고 있다는 부담감도, 이젠 저를 좀 더 아낄 줄 아는 방법을 배우면서 점차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살아온 저라 타인에게 부정적이었지만, 이런 일을 업으로 삼는 상담 선생님을 뵈면서 ‘사람은 믿을만하구나.’, ‘내가 먼저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온갖 것에 시달리지 않고 기분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신 상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