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왔다.
서울의 광화문에 왔다.
눈을 감고 서울의 모든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았다.
이곳에는 투쟁과 축제가 공존하고 있었다.
분노와 한숨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눈물흘리는 부모와 그들의 자녀가 있었다.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온 임상심리전문가 문가인에게 가장
먼저 SOS를 치는 사람들은 일명 문제아를 둔 부모와 자녀들.
문제아를 정신과적 진단용어로는 품행장애(Conduct disorder)라고 칭한다.
잦은 결석, 거짓말, 부모와 선생님에 대한 반항 및 비순응, 또래와의 다툼 및 폭력,
사기, 도벽, 학업포기 등 가정, 학교 및 사회에서 금지하는 행동들을 일삼는 경우이다. 혹은
가정, 학교, 사회의 규칙에 순응하지 못하는 경우라고도 볼 수 있다.
품행장애 청소년, 그들은 왜 반복해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자신과 부모, 선생님을 고통스럽게 할까?
그들은 일부러 고통을 선택하는 것일까?
인간을 비롯한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진화되어왔고
지금 이 순간도 진화하고 있다. 이것이 대전제다.
품행장애 청소년 그들의 문제행동도 결국 그들의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선택한 행동인 것이다.
어른들이 문제라고 규정한 그 문제행동도 그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문제는 그들 나름의 최선의 선택, 또래집단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음주, 흡연, 거짓말, 사기라 할지라도.
그들은 잘못된 사람이 아니다.
단지 그들은 생명유지를 위한 현명한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사랑과 성공을 위해 진화되어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품행장애 청소년의 문제행동이란 것도 그들의
사랑과 성공이란 목적을 선택한 행동인 것이다.
그들은 잘못된 사람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사랑과 성공을 위한 현명한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 방법을 어른들은 사회는 알려줘야 한다.
어떤 길이 자신의 삶을 위해 바람직한지,
어떤 방법이 사랑과 성공을 위해 바람직한지 알려줘야 한다.
우리의 부모는 바쁘다. 자녀들에게 좋은 대학, 좋은 옷,
좋은 음식을 제공해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눈을 맞추고 청소년 자녀가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천천히 들어볼 여유가 없다.
지시와 충고하기 바쁘다.
청소년 자녀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충고의 말을
하거나 어느때는 장시간에 걸쳐서 잔소리를 한다.
그런 말들은 자녀의 머리속에 머물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버린다.
오늘도 품행장애 청소년들은 행동으로 신호를 보낸다.
도와달라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성공하고 싶다고.
나는 서울에 와서 품행장애 청소년들의 친절한 멘토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