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날 동생이 새 아파트로 이사가려고 짐을 정리하다보니, 언니의 일기장이 자기집에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며칠전 언니 일기장을 보내주려고 하는데 주소를 불러달라고 했다. 동생은 그 일기장이 몇살 때 쓴 것인지,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시절부터 대학시절,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일기를 쓰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컴퓨터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일기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일기인지 궁금하면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며칠전 상담센터로 우체국택배가 도착했다. 뜯어보니 동생이 보낸 일기장이었다. 그런데 그 일기라는 것이 초등학교 5학년때 쓴 것으로 총 7권이 한 묶음으로 되어 있었다. 대략 훑어보니, 그 일기의 내용은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 독서나 만화책을 읽은 소감, 시, 그림 등으로 되어 있었다.
일기의 내용은 사실적이고 간결하였으며, 많은 내용이 독서나 만화책을 읽고 줄거리를 요약하고 소감을 적거나, 심지어 텔레비젼을 보고 소감을 적은 것도 많았다. 군데 군데 계절과 날씨에 따라 동시가 쓰여져 있었고, 그 때 그때의 감흥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일기를 보고 느낀 나의 감정은 놀라움과 감동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초등학교 5학년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훌륭하다라는 것이었다.
일기의 전반적인 내용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등이 곳곳에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이 일기를 보고 몇번이나 자문해보게 되었다. 과연 현재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훌륭한가?.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아동과 청소년보다 과연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기에 표현된 그 시절의 나는 자발성과 창의성, 상상력이 충만해 보였으며, 작은 예술가라고 칭해도 될 정도였다. 선생님들은 그 작은 예술가의 일기에 대해 철자가 틀린 곳을 수정해 놓았을뿐, 어떤 제재나 간섭의 글은 전혀 없었다. 낙서 비슷한 그림이 일기장에 군데 군데 조잡하게 그려져 있었고, 어떤 책에서 옮겨 온 동시, 친구의 글을 보고 적어놓은 글, 심지어 만화 콩트까지... 일기장의 전반적인 내용에서도 부모님께서 잔소리를 하거나 간섭을 한 내용은 거의 눈에 띄이지 않았다.
만약 오늘날의 선생님이나 부모라면 학생의 이런 일기에 대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상담센터를 찾아오는 보호자들의 모습들도 떠올랐다.
어린시절에 쓴 일기는 나같은 상담자를 포함하여 학교의 선생님, 보호자들이 학생과 자녀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생각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 그들 자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격려하고 지지해주어야 할까? 아니면 통제와 간섭의 대상으로 잔소리를 해야만 하는 걸까? 어떤 것이 자라나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더 바람직한 태도인가를 이 일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동, 청소년, 그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 훌륭한 존재가 아닐까?"
* 일기장에 쓰여진 동시 한편이다.
제목: 겨울
겨울은 왜 올까?
아이들 마음에
흰마음 실어주러 찾아온다.
겨울은 왜 올까?
아이들 무럭무럭
크라고 찾아온다.
겨울은 왜 올까?
겨울나무 따뜻하게
옷 해주러 찾아온다.